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 역사에 대해 포스팅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와인용 포도는 위도 30도~50도 사이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북아메리카에는 8,391개의 와이너리 가 있고, 이 중에서 90% 이상이 미국에 있으며 이는 프랑스의 와이너리 숫자와 비슷합니다. 와인 세계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는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이 언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봅시다.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포도
고대 오리엔트에서 유럽, 심지어 아메리카로 퍼져나간 와인의 확산은 인류의 역사와 겹칩니다. 유럽의 와인용 포도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곳은 미국과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전통적인 신세계 와인 생산국이 아니라 지금의 멕시코입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톨릭 성찬식의 필수품인 와인을 제공하기 위해 포도나무를 도입하여 스페인 선교회에서 재배한 것이 시초입니다. 그 이후로 프랑스, 이탈리아와 독일로부터 포도 품종들이 지속해서 유입되어, 16세기 초 무렵에는 멕시코는 이미 스페인의 와인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존재감이 있는 와인 생산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경쟁적인 분위기가 지속되자 스페인 국왕은 멕시코에서 포도의 재배와 와인의 생산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 역사 탐구
1. 미국 와인의 역사
1629년에 뉴멕시코(New Mexico)주에 위치한 산안토니오(San Antonio) 마을에서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종을 최초로 재배하면서 미국의 와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1769년에는 스페인의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최초의 상업적 포도원은 1831년에 로스앤젤레스에 보르도 출신 이민자인 장 루이 빈스(Jean-Louis Vignes, 1780~1862)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1851년에는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40,000그루의 포도나무를 경작하여 연간 12만 리터의 포도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러츠티(Agoston Haraszthy, 1812~1869)는 ‘캘리포니아의 현대적 포도 재배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는 1857년에 다양한 토양과 상태에 따라 재배 경험을 정리하여 포도밭의 경영과 와인의 제조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해러츠티(Haraszthy)와 함께 일하였던 찰스 크러그(Charles Krug, 1825~1892) 와이너리의 설립자 크러그(Krug)도 나파 밸리(Napa Valley)에서 와인 양조의 대표적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나파 밸리의 와인은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다양한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국제무대에서 미국산 와인의 위상을 드높였지만, 그 이후 40년 동안은 심각한 서리, 필록세라 기생충의 창궐, 세계 대공황, 5천만 병의 와인을 파괴한 1905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이어진 금주법 등 고통의 시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2. 아르헨티나의 와인 역사
아르헨티나의 와인 역사는 16세기 초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최초로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종을 도입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51년에는 아르헨티나 최초로 포도나무를 재배하였고, 중부를 시작으로 서부와 북동쪽으로 빠르게 확산하였습니다. 안데스산맥 지역의 토양과 최상의 기후조건에 힘입어, 아르헨티나 와인 양조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9세기 유럽 이민자들은 안데스산맥의 동쪽 기슭과 리오 콜로라도(Rio Colorado)강 계곡에서 이상적인 재배 환경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포도 재배 기술과 품종을 도입하였으며, 와이너리의 설립과 최첨단 기계와 기술의 도입, 과학적 지식에 기초한 와인 양조의 개발을 위한 우수한 인적 자산의 확산과 함께 제도와 법률의 제정 등 모든 요인이 포도 경작지의 면적과 와인 생산량의 확장에 기여하였습니다. 1873년경에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5,000에이커의 포도밭이 있었고, 1893년에는 25,000에이커로 5배 증가하였으며, 2000년대 초에 포도밭 면적이 무려 60만 에이커를 넘어서는 등 와인 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3. 칠레의 와인 역사
1554년경에 스페인 정복자와 선교사들이 유럽을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품종을 칠레에 최초로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당시에 칠레는 스페인으로부터 와인을 사야 한다는 협정에 따라 포도주의 생산을 제한받았습니다. 더욱이 1641년에 스페인이 칠레와 페루로부터 와인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식민지의 와인산업은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칠레인들의 대부분은 본국의 억압적 조치를 따르지 않고, 긴 항해 동안 산화되어 신맛이 나는 스페인산 와인보다는 국내에서 생산한 신선한 와인을 즐기며 저항정신을 드러냅니다. 더욱이 그들은 대담하게 옆 나라인 페루로 와인을 수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칠레의 대부분 포도나무를 뿌리째 뽑으라고 명령하였으나, 이 지시도 깡그리 묵살되었습니다. 18세기에 칠레는 디저트 와인 생산지로써 잘 알려져 있었는데, 포도즙을 끓여서 높은 당도로 농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칠레는 마이포(Maipo) 밸리, 라펠(Rapel) 밸리, 쿠리코(Curico) 밸리 등지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말벡, 샤르도네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과 파란만장한 역사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축복받은 와인의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기후도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이고 땅도 광활하기 때문입니다. 매년이 위대한 빈티지 연도이며, 포도 재배의 이상적인 기후, 토양, 지형이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고, 대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인접하고 있어서 부자 와인 애호가가 많으며, 자본도 넉넉하고 풍요롭습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는 고품질로 비싼 와인을 만드는 유명 와이너리도 많고, 와인 애호가의 평가도 매우 높아서 전 세계 와인 생산자가 캘리포니아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가 전 세계의 와인 애호가로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고 아메리카 와인의 리더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만, 실은 그 전의 100년간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양한 천재지변과 인재를 맞닥뜨리기도 하고, 미국 국내에 고급 와인의 수요랄게 거의 없었던 수난의 날들도 많았습니다. 금주법 시절에 포도 재배자들은 포도 주스를 농축하거나 가공하면서 고난의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와이너리끼리 서로 돕고, 주 정부도 와인 생산자를 지원해 주며 차례차례 닥쳐오는 수난을 오롯이 견디어 냈습니다. 쾌활하고 밝은 캘리포니아 와인 뒤에는 어려움과 노력의 나날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을 마실 때, 뛰어난 품질을 즐기시면서 이 위치까지 오기 위해 고군분투한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 역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또, 아메리카 와인 생산자들이 겪었을 여러 고난과 고급 와인에 목숨을 건 선인의 열정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번 글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와인 역사에 대한 지식을 조금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