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와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떼루아(terroir)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와인을 논할 수 없으며, 와인 포도가 자라는 포도밭의 토양은 물론 그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에서는 떼루아(terroir)를 위해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불개입주의(no interventionism)를 실천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포도 재배 환경은 와인의 핵심이자 중추입니다.

목차
어원과 개념
포도의 생육환경과 관련하여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고 개념적으로 불명확하여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프랑스어인 ‘떼루아(terroir)’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떼르(terre)’의 파생어입니다. 이것은 포도밭의 전반적인 생육환경을 의미하며, 기후와 미기후, 토양, 지형, 관개, 배수 등 제반 요소의 상호작용과 포도의 재배와 와인의 생산에 관여하는 인간까지도 포함하여 일컫는 포괄적이며 집합적 개념입니다. 와인이 특정한 장소에서 자라서 가지게 되는 고유한 향기와 맛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은 11세기 부르고뉴(Burgandy)의 시토(Cistercian) 수도승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수도승들은 떼루아(terroir)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와인이 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과 빈티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도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최초로 인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서 프랑스의 와인 제조자들은 다른 지역, 다른 포도밭과 심지어 같은 포도밭의 다른 고랑에서 재배한 포도까지도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관찰하여 떼루아의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떼루아(terroir) 탐구
1. 포도는 자연환경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떼루아(terroir)는 주어진 포도밭 부지에 작용하는 모든 환경적 힘의 합으로 정의되어 왔습니다. 토양, 경사, 태양의 방향, 아침햇살의 희미한 빛에서부터 황혼의 순간까지 기후의 모든 뉘앙스, 더위와 시원함, 강우량, 풍속, 안개 등 끝없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와인에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함을 부여해 줍니다. 토양과 상호작용하는 기후는 일반적으로 넓은 지역의 대기후(macroclimate), 그 지역에 속한 좁은 영역의 중기후(meso-climate), 특정한 포도밭이나 밭고랑의 미기후(microclimate)로 세분됩니다.다. 예를 들어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Medoc) 지역이 대기후라면, 뽀이약(Paulliac)은 중기후이며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의 포도밭은 미기후입니다. 비옥한 정도, 배수, 열 보존력과 같은 포도밭의 토양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특성뿐만 아니라 포도밭에 생존하는 동물군(fauna), 식물상(flora)과 토양에 있는 미생물의 종류와 수 같은 유기체의 상태도 와인 생육환경의 구성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2. 인간이 조정할 수 있는 요소들
떼루아(terroir)의 의미는 인간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조정될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재배한 품종을 선택하고, 발효 방식, 와인을 숙성할 때 오크통 사용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유기농법 등의 경작 방법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떼루아(terroir)의 변수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지치기, 관개, 수확량과 수확시기의 선택 등에 관한 재배 농민과 양조인의 판단력이 와인에서 떼루아(terroir)가 발현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와인의 각각의 토지의 풍토와 와인 문화라는 개념이 합해져 결국 자기 고장의 와인에 대한 애착과 가치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떼루아(terroir)는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통과 문화로써 전달되어 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3. 떼루아(terroir)는 원산지 보호 명칭 제도의 근본
떼루아(terroir)가 중요하다는 것은 포도 품종과 와인 제조 기술을 정밀하게 복제한다 해도 특정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여타 지역에서는 똑같이 만들어질 수 없는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고뉴(Bourgogne)의 와인 생산자들은 부르고뉴에서 피노 누아(Pinot noir) 와인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피노 누아(Pinot noir)로 특별한 부르고뉴 와인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1930년대에 제정된 원산지 보호 명칭(appellation d’origin protegee(AOP) 체계와 같은 원산지 제도는 ‘포도밭을 둘러싼 환경이 와인의 맛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오랜 생각을 배경으로 만든 제도입니다. 더불어 생산지를 속이는 행위나 가짜 와인 제조를 단속하고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개성과 품질을 지키는 목적으로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포도 품종과 생산자보다는 지역과 포도밭을 강조하는 사상은 프랑스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 국가의 와인 레이블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와인에 차별성과 가치를 주다.
와인의 원료에 주로 사용되는 포도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과일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장소에 심겨 있는지가 확실히 개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전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도 “포도나무는 어떠한 과일보다 토지의 개성을 잘 반영한다고”고 적고 있습니다. 한 해에 포도가 재배되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기후와 요소의 합이 하나의 와인 한 병 속에 담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를 필두로 한 유럽의 나라에서는, 이 떼루아(terroir)가 와인의 맛에 큰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와인 법률이 토지를 기반으로 제정되었고 대부분의 와인 이름은 산지 이름에서 따옵니다. 이러한 사상을 ‘Vin de Terroir’라고 합니다. 프랑스어 떼루아(terroir)를 정확하게 표현할 단 하나의 한국어 단어는 없지만, 와인이 놓인 철학적 토대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와인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다른 주류와 와인을 구별되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와인의 떼루아(terroir)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은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풍미가 농축된 작은 포도에서부터 양조 과정에서 일어나는 발효 현상까지도 자연의 힘이 와인 제조 과정 전반에 녹아듭니다. 빈티지 와인을 열 때마다 그 와인이 만들어진 한 해의 자연을 즐긴다고 생각하시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