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용(Semillon)은 프랑스 보르도산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포도 품종입니다. 보르도에서는 인기 품종인 소비뇽 블랑과 블렌딩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 혼합용 포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보르도 외의 지역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훌륭한 와인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세미용 포도 품종의 특징, 산지, 음식 궁합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세미용의 특징
세미용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 원산지인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입니다. 단맛부터 드라이한 맛까지 폭넓은 종류의 화이트 와인을 양조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장기 숙성도 가능한 견고한 질감의 와인이 되지만, 담근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는 그다지 특색이 없고 향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강한 아로마와 높은 산도를 가지는 소비뇽 블랑과 혼합되어 와인으로 만들어지곤 합니다.
또한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 무스카델(Muscadelle) 등을 블렌딩해서 만든 보르도의 ‘소테른(Sauterne)’은 세계 3대 귀부 와인 중 하나이며, 단맛 와인 중에서 드물게 장기 숙성하는 세계 최고봉의 와인으로 유명합니다. 이 품종은 재배하기 매우 쉽고 생산성도 높은 포도 품종으로, 나무가 자라는 기세도 강하고 열매는 빠르게 익는 편입니다. 껍질은 밝은 황록색을 띠고 있으며 과피가 얇은 편이라 귀부 균이 붙기 쉽기 때문에 귀부 와인을 만드는 데 최적의 포도 품종입니다.
세미용의 주요 산지
주요 산지의 필두는 단연코 프랑스의 보르도입니다. 보르도에서는 드라이한 버전과 단 버전으로 두 가지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주 헌터 밸리와 남아프리카에서도 훌륭한 세미용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산지에 따라 와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산지별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프랑스 보르도(Bordeaux)
프랑스 보르도는 포도와 명품 와인 산지로서 너무 유명해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의 와인 재배지는 지롱드(Gironde)강 유역에서부터 대서양까지 이릅니다. 보르도에서 만든 세미용 와인은 귀부 와인의 종류인 ‘소테른’이 유명합니다. 고품질의 귀부 와인은 보르도시의 남동쪽, 지롱드(Gironde)강 상류에 있는 가론(Garonne)강 좌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포도가 익어가는 가을 무렵엔, 숲속을 흐르는 시론(Ciron)강의 차가운 지류들이 커다랗고 따뜻한 가론강과 합류하여 수온의 차이를 일으키게 되고, 아침 안개가 발생하여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 밭을 하얗게 덮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태양 빛으로 인해 따뜻해지고,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조건이 갖추어지면서 귀부(Botrytis cinerea) 균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귀부(noble rot) 균에 의해 포도 껍질에 구멍이 나서 수분이 증발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 귀부 와인입니다. 이 축복받은 기후 조건 아래서 귀부 포도로 만든 와인은 풍요롭고 농후한 단맛을 뽐냅니다. 색깔도 황금빛을 띠며, 홍차, 꿀, 바닐라, 말린 살구의 향이 인상적입니다. 입안에 남는 산미도 품위 있고 우아하지만 단단하고 확실한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이 강한 산도는 장기 숙성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한편 드라이한 세미용 포도는 보르도시의 남쪽 그라브(Graves) 지구와 지롱드(Gironde)강으로 합류하는 가론(Garonne)강과 도르토네(Dortone)강 사이에 끼인 앙트레-듀-메르(Entre-Deux-Mer) 지구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보르도 그라브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은 레드 와인처럼 참나무통으로 숙성시키기 때문에 복잡하고 확고한 감칠맛이 있는 화이트 와인이 됩니다. 그라브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양조장인 ‘샤또 오 브리옹(Chateau Haut Brion)’은 명실상부 보르도 최상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2. 호주 헌터 밸리(Hunter Valley)
헌터 밸리는 시드니 북쪽에 위치한 역사적인 와인 산지입니다. 이 땅에서 만든 세미용 100%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헌터 세미용’이라는 독특한 스타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헌터 밸리에서는 수확기가 강우기와 겹치기 때문에 강우를 피하고 산도가 떨어지기 전에 일찍 수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 산도가 높고 풍부한 와인이 됩니다.
갓 만들어졌을 때는 감귤류의 상큼한 향기와 미네랄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신선함이 인상적이며, 산도가 제대로 남아 있어서 그런지 장기 숙성도 가능하고, 6~10년 정도 숙성시켰을 경우엔 꿀이나 견과류의 고소함, 구운 향 등의 복잡한 맛이 있는 와인이 됩니다. 헌터 세미용은 이 땅의 기후 조건 아래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남김없이 표현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남아프리카
남아프리카는 현재 세미용 생산량이 많지 않지만, 19세기에는 총재배 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재배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은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으로 품종을 바꾸어 재배하고 있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수령이 오래된 세미용 나무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고품질의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는 세미용 와인은 감귤류의 신선한 산미와 허브와 같은 뉘앙스를 가지면서도 기름진 느낌도 나며, 장기 숙성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신생 생산자들은 최근 유기농 재배나 심플한 양조법을 실천해, 순수하고 과일 맛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덧붙여 현재 이 포도 품종은 남아프리카 와인 생산의 중심지인 서부 케이프주 해안 지역의 케이프타운 근교나, 프랑스계 이민이 많은 프랑슈크(Franschuck) 지구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잘 어울리는 요리
드라이하고 은은한 쓴맛이 있는 신선한 세미용 와인에는 가리비의 카르파초나 생굴, 생선회, 흰살생선 소금구이 등과 잘 어울립니다. 한편으로 숙성된 경우라면, 해산물의 뫼니에르(Meuniere)나 튀김 요리 등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흰살생선과 돼지고기가 잘 어울립니다. 특히 보르도에서 자주 보이는 소비뇽 블랑과 혼합한 블렌딩 와인은 생선 요리 대부분과 궁합이 좋습니다.
보르도의 귀부 와인은 매우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므로 식후에 디저트로 마시는 것이 가장 인기 있습니다. 따뜻한 상태에서는 단맛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므로 10~13℃의 온도로 차갑게 드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또, 소테른(Sauternes)이나 발자크(Balzac)처럼 달콤한 와인에는 뭐니 뭐니 해도 푸아그라가 잘 어울립니다. 소테른과 푸아그라는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드셔보셨으면 하는 조합입니다. 부담 없이 드시고 싶으시다면 푸아그라를 넣은 테린느(terrine)나 푸아그라 패티를 백화점 지하 등에서 구입하셔서 와인과 간단히 곁들여 드시면 좋습니다.
마무리
세미용(Semillon)은 숙성되기 전엔 향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소비뇽 블랑과 블렌딩용 하는 포도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블렌딩한 와인은 소비뇽 블랑에서는 장기 숙성에 견딜 수 있는 높은 산도를, 세미용에서는 당도가 높은 과즙과 응축된 질감을 뽑아낼 수 있어서, 각각의 품종이 서로 보완함으로써 더욱 훌륭한 와인이 됩니다. 돕는 보조 품종 이미지가 강하지만, 세미용이 없었다면 소테른(Sauterne)도 세계 최고봉의 귀부 와인으로서의 명성은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포도 품종이 그 역량을 발휘하려면 그 토지의 축복받은 기후 조건이 빠질 수 없습니다. 산지마다 맛이 다르고 개성도 강하기 때문에 산지별로 즐겨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